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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心

숲(최유리)

by 항래안방 2025.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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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바다 사이, 나라는 존재

 

나는 가만히 서서 생각해본다. 내가 숲이라면, 누군가는 그 숲을 오르며 나를 바라보겠지. 작고 낮은 언덕이지만, 그 위에 서서 내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저 한 자락의 그늘이라도 되어주고 싶었다.

 

https://youtu.be/cu9VVH9cSWc?si=j9buHJCCyJXWRVwg

숲 - 최유리<최정훈의 밤의공원> KBS 230616 방송

 

날 베어도 돼.” 내 안의 어떤 목소리는 그렇게 말한다. 누군가의 길을 위해 내가 잘려 나가야 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그가 내 안에서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다면 그만큼의 상처쯤은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숲이 아닌 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이 열려 있고, 끝이 보이지 않으며,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삼켜버리는 존재. 옆에 있던 나무 하나가 너무 높게 자라난 탓일까.


나는 숲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바다였는지도 모른다. 하나쯤은 분명히 하고 싶었다. 나는 누구일까. 숲인가, 바다인가. 아니면 그 어느 곳에도 닿지 못한 채 떠도는 안개인가. 눈물로 옷이 젖고 마음이 무너져 내릴지라도 나는 끝내 숲이 되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를 안아주고, 길을 내어주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그 모든 감정을 삼켜버리는 바다가 되고 싶었다. 흘려보내고, 감추고, 조용히 모든 것을 안고 떠나버리는 그렇게 나는 수없이 흔들렸다. 숲이 되려는 마음과 바다가 되려는 마음 사이에서 내가 누구인지 몰라 매일 조금씩 가라앉기도 하고, 조금씩 솟구치기도 했다. 내 안에는 나무도 있고, 물결도 있었다. 상처도 있고, 다정함도 있었다.

 

나는 내 눈물로 바다를 만들었다. 그 바다 위에 한 척의 작은 배처럼, 누군가 나를 찾아와 머물다 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육지로 나아갈 때 내 안에 머물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해주길 바랐다. 때때로 나는 육지에 나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다시 숲이 된다. 그늘을 만들고, 바람을 감싸 안고, 잠시 멈춘 이들의 등을 토닥여 주는 존재. 그리고 문득 문득, 나는 내 안의 바다를 떠올린다. 그때 나는 알게 된다. 나는 숲이면서 바다이고, 고요하면서도 거센 바람을 품은 존재라는 것을. 나는 이제 두려워하지 않는다. 흔들리더라도, 가라앉더라도, 언젠가 다시 뭍에 서서 숲이 될 나를 기억하며, 오늘도 나라는 숲을, 나라는 바다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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